"더 글로리"는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김은숙 작가 커리어에서 가장 강렬한 변화의 시점이었다.
서론: 로맨스를 쓰던 작가, 왜 복수극으로 돌아섰을까?
김은숙 작가는 『파리의 연인』, 『도깨비』, 『태양의 후예』처럼 로맨틱하고 감성적인 작품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아온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대부분 비현실적인 남주, 시적인 대사, 판타지적 감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죠.
그러나 2022~2023년에 방영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장르가 바뀌었고, 감정선이 무거워졌으며, 캐릭터는 현실을 직시했고, 사회적 메시지가 중심에 섰습니다.
이 글에서는 김은숙 작가의 전작들과 비교하여, 『더 글로리』가 어떤 점에서 본질적으로 달랐는지를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1. 장르의 급격한 전환 – 로맨스에서 사회 복수극으로
김은숙 작가의 기존 작품은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 혹은 판타지 로맨스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더 글로리』는 학폭(학교폭력), 가해자 처벌, 시스템의 무력함 같은 현실적인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하드코어 복수극입니다.
그동안의 ‘환상적인 감정’이 아닌,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 구조로 완전히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또한, 플롯 전개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감정 중심 → 사건 전개였다면, 『더 글로리』는 사건 중심 → 감정 누적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 사회적 메시지의 명확화 – 단순한 오락이 아닌 고발
『더 글로리』는 단지 한 여자의 복수를 그리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현실에서 일어난 학폭 사건들을 모티프로 활용했으며,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특히, 드라마 속 ‘학교’, ‘교사’, ‘경찰’, ‘병원’, ‘법원’ 등 다양한 기관이 폭력의 공범으로 기능하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김은숙 작가는 감정을 조율하기보다는, 사회의 무관심과 방관을 날카롭게 해부하며, 시청자에게 ‘직시하라’고 말합니다.
3. 캐릭터의 변화 – 로맨틱 판타지 주인공 vs 생존형 인간
전작의 남주들은 대체로 ‘이상적인 남자’였습니다. 재벌, 군인, 불사신 등 현실에 없는 존재가 감정을 통해 변화하는 이야기를 다뤘다면, 『더 글로리』는 현실 그 자체에서 상처받고 망가진 인물이 등장합니다.
- 문동은: 감정 없는 로봇처럼 보이지만, 속은 누구보다 붕괴되어 있는 인물
- 주여정: 복수라는 공동의 목적을 통해 감정을 회복하는 존재
- 박연진: 악역이지만,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괴물
모든 인물이 감정이 아닌 목적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그 속에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는 김은숙 작가의 인물 설계 방식이 완전히 변했다는 증거입니다.
4. 감정선의 구성 방식 변화 – 말 대신 행동
김은숙 작가의 특징 중 하나는 감정을 말로 풀어내는 대사 중심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글로리』에서는 말보다 ‘행동’이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 문동은이 눈물 한 방울 없이 무표정하게 복수를 설계하는 장면
- 주여정이 해부실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는 순간
- 연진의 눈에서 공포가 일렁이던 마지막 회 엔딩
감정이 억제되어 있기 때문에, 반대로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존재합니다.
이 변화는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김은숙 작가가 ‘대사 없는 서사’를 얼마나 잘 설계할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5. 복수의 정의와 도덕성 – 끝내 해결되지 않는 질문
『더 글로리』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나쁜 놈 혼내주기"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동은의 복수는 성공했지만, 그 끝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주여정의 복수는 자신을 구하는 듯 보이지만, 새로운 지옥의 시작이기도 하죠.
이 드라마는 끝까지 "복수는 옳은가?"라는 질문을 강요하며, 시청자에게 답을 맡깁니다.
이런 구조는 김은숙 작가 특유의 해피엔딩 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도이며, 그녀의 작가적 성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결론: '더 글로리'는 김은숙 작가의 리부트였다
『더 글로리』는 김은숙 작가의 커리어에서 단순한 도전이 아닌, 완전한 리부트라 할 수 있습니다.
장르, 메시지, 인물 설계, 감정선 구성, 서사 구조까지 모든 면에서 전작들과의 차별성을 보여줬습니다.
이것이 바로 ‘더 글로리’가 김은숙 작가의 필모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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